예배에서 차지 하는 음악의 위치

 


십계명의 첫 머리에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 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그 분이 " 우리의 하나님" 이 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과 그 외 많은 이적을 통해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셨다.
예배 안에서 말씀과 세례와 성만찬을 통하여 아직도 우리를 위하여역사하심으로 인해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을 확신할수 있다.
이상과 같이 확신하는 믿음의 행위가 곧 예배이고, 이 믿음만이 십계명의첫 계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믿음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의 사이에서 특별한 교제를 갖는 시간이 예배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Luther는 하나님과 예배는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예배의 아이디어가 결정된다고 했다. 예배란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이라고만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예배할 수 밖에 없도록 하셨다는 점이 더강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구주이신 것을 인간들이 알아 주기를 촉구했고, 또 그것을 자백하고 인정하도록 하는 타의적이고 강압적인 의미가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보다 강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고 드러냄으로 해서 우리의 예배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예배는 복음을 다시듣게하고 그 복음이 재 활성화 됨으로써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재현하시고 다시 역사하셔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곧 우리와 우리세대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복음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한때 역사 속에서 외쳐졌던 복음의 메아리가 아니고 지금바로 외치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재현 하셔서 다시 말씀하시는것을 듣는 것이다. 예배에서 인간이 할 근본적인 응답은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의 찬양이요 감사의 찬송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영광에 합당한 찬양, 그의 사랑과 인간 구속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감사의 찬양이 예배의 어느 것 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곧 음악이 예배에서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다. 그러므로 "영이신하나님에게 영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신령한 음악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4:24).

음악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배는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곳에서 있을 수 있다.
예배에서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 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나 또는 기계적이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로만 가능한 것이다. (요14:15-26,롬8:26,히브리7:25)

 

1. 음악은 영감적인 것

고대 철학자들은 음악이 인간의 심성 즉 성격형성과 인간의 영혼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써 인간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게도 하고 또는 정신적으로성격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도 만들 수 있는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보았다.


Plato는 "한 나라의 음악을 제정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나에게 준다면나는 누가 그 나라의 법률을 만들든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동양의순자는 "한 나라의 정치가 잘되어 가는지를 알려면 그 나라 사람의 음악을들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음악이 인간의 품성 형성에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희랍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칠 가장 중요한 두개의 교과목으로음악과 체육을 국민 기본 교육에 넣었다. 심지어는 음악을 통하여 사람의병도 고침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여 당시에는 희랍에서 음악요법(musictherapy)도 성행하였다.
이들의 이와 같은 사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음악 치료법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또음악은 우주적인 언어라고 우리는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영적인 하나님에게 영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영적인 언어인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Martin Luther의 가치관에서 음악은 신학 다음이었다. 그는 종교개혁과함께 평신도 전체가 함께 찬송가 부르는 것을 시작하였고 음악을 학교 교육의 필수로 하였다. 그리하여 음악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목사의 안수를 주지 않았다. Luther는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케되는 것도 음악을 통해서이고, 또 이스라엘 왕 사울의 경우처럼 음악을 통해서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의를 내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음악은 어떤 무엇보다도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실상 Luther가 종교 개혁후 그가 가서 설교하는데는 어디서나많은 군중들이 몰려 들었는데 그것이 그분의 훌륭한 설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의 찬송의 힘이 더 컸다고 하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지 못했던 그 당시의 천주교회와 찬송가가 큰 역할을하는 지금의 부흥회를 비교해 볼때 그러한 기록이 과장이 아닌 것을 알 수있다. Luther가 가진 교회음악에 대한 이와같은 철학으로 인해 그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세계문화사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과 같은 큰 영향을음악사에 남겼다고 볼 수 있다.


2. 교회음악에 대한 Calvin의 사상


16세기에 John Calvin(1509-1564)이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때에 그는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찬송가도 못 부르게 하였고, 오직시편가만을 부르도록 제한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의 오르간도 부수었다. Calvin은 찬양의 노래란 사람의 가슴 속에서 울어나오는 신실한 노래로써 단순하고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약에서 악기를 쓴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유치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는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예배드려야 하고 구약시대를 지금와서흉내낸다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Calvin은 Bourgeois라는 사람에게 단순한 멜로디로 부를 수 있도록 시편가를 만들도록 했다. 후에 Bourgeois가 자신이 작곡한 시편가의 곡을 보다 좋은 멜로디로 고쳤을때 그는 체포되어 허락없이 마음대로 곡을 고쳤다는 죄명으로 형무소에 들어가 16년의 감옥 생활을 하고 직업도 잃어버리고 Calvin에게 거역했다는것으로 Geneva를 떠나고 말았다. 현재 장로교회에서 예배 중에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Calvin사상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개신교 아무교회도 Calvin이 만든 시편가만 부르는 교회는 없고, Calvin이 예배에서 부르지 못하게 한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 교회가 없다. 심지어는 Calvin이 다니던 Geneva교회의 헐어버린 오르간도 다시 신축하여 예배에서 사용하고있는 것을 보아 Calvin의 그와 같은 사상은 현대의 개신교회에서 받아 드려지지 않고 있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교회에 성가대가 있고 악기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지극히 성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악기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것은 준비 안된 합주단이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서 예배시간에 연주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은혜스러운 예배를 방해하게 되므로 그런 이유로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수는 있을 것이다.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Calvin의 본 뜻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3. 찬양은 교회력에 따라서

음악 목회자의 가장 큰 고심은 설교의 주제와 그날 성가의 주제를 일치시키는 일이다.

설교 제목과 내용이 "고난의 그리스도"인데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주"란 찬양을 부른다면 예배의 전체에 통일성이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 목회자가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는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대체로 토요일 밤에야 결정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설교의 주제와 음악의 주제를 맞추려고 한다면 한 달 전에는 설교 계획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일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력에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언제 부터인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제외하고는교회력을 따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구주가 오시는 크리스마스가 더 중요한 날이 되기 위해서는 그를 기다리는 준비의 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대강절(The Advent) 또는 강림주간이라고 한다.
강림주간을 통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컸을때 그리스도의 탄생이 더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고난을 함께 받아야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승리적인 실감을 줄수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중요한 것처럼 그의 승천도 중요하고 오순절 성령의 강림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절기의 교회력에 따라 설교와 예배가 진행된다면 음악목회는 아주 용이해 질수 있고, 또 통일된 예배를 가지므로 인해 보다 은혜스러운 예배를 드릴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의 생신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여 잔치를 갖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중요한 날들을 기념한다는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교회력에 의한 음악의 선택은 음악목회자가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다. 즉 고난주간에 John Stainer의 The Crucifixion을 연주하는 것은 적절하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슬퍼해야 할 고난주간에 기쁨과 승리의 음악인Hallelujah라든지 부활절에나 부를 수 있는 부활의 찬양을 부른 다면 이는대단히 잘못 된 선택이다. 몇년 전 서울시내의 모교회에서는 부활주일 저녁예배에서 Stainer의 {The Crucifixion}을 연주하면서 부활절 칸타타라고순서에 쓴 것을 보았는데 이것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본다. 부활절날에 노래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활절 칸타타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부활절 칸타타가 아니고 고난의 칸타타이고 부활절 아침 이후에는고난의 음악을 불러서는 안된다. 특별히 부활절 주일에는 더 말할 나위가없다.

 

4. 모범적인 예배는 음악예배

음악에는 두 가지 지배적인 철학 사상이 있다. 그 하나는 Isolationis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음악이란 감정이나 느낌이 표현되지 않은 연속적인 음들의 외부적인 표현이어서 음악의 의미를 음악적인 용어 이외의 다른 말로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말한다. 즉 음악은 음음악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음악적인 용어 이외에 다른 말로 바꾸어서 설명할 수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철학인 Contextualism은 이와는 반대로 "음악은 단순한 음의 움직임 이상의 무엇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에 의하면 음악은 아이디어가있고, 감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심지어는 생의 철학까지도 음악 속에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래서 음악의 진가는 인간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나타난다고 하고 그러기 때문에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영적인 움직임과 감동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음악은 Contextualism의 음악철학을 따르고 있다. 내가 음악을 통해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또한 내가 영적인 찬양을 부름으로인해 나의 영과 듣는 자의 영이 은혜 가운데 서로 교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성가, 특히 성가대원들의 찬양은 사회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비록 목소리가 좋지 않더라도 영적으로 불러야 한다. 자기 기분을 위한것이거나, 또는 남에게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노래할때 하나님의 영과 교통이 되어 그에게 영광을 드릴 수 있고, 영으로예배하는 자들과 영적인 은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범적인 예배, 가장 아름다운 예배, 가장 은혜스러운 예배는 음악예배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예배라고 해서 요즘 흔히 하는 것처럼 1부에서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난 다음 2부에서 몇개의 음악순서를 가지고 연주하는것과 같은 발표회 성격의 음악예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순서와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어 명실공히 음악으로 구성된 예배를 말한다. 우리가 예배와 음악에 있어서 분명히 알아둘 것은 예배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절대로 음악회에서의 연주처럼 발표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회 예배에서의 독창자들도 자기의 발성의 테크닉이나 목소리를 자랑하기 위하거나 그런 의도가 보이는 연주를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성가대와 독창자 모두 오직 진실된 마음과 믿음에서 울어나오는 영적인 노래를 할때 그것만이 예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신앙을 기르는 일 즉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은혜를 갈급해 하는 생활을해야 한다. 유태교와 구교에서는 지금도 성경낭독과 시편낭독을 노래로 한다. 기도도 노래로 한다. 카톨릭 예배의식은 설교를 제외하고 모든 순서를 음악으로 하게 되어 있다.

예배의 이상은 예배 전체가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신령한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범적인 예배는 음악예배가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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